고조선 연구

고조선 연구
2015년 윤내현 지음

머리말

한국사에서 고조선(단군조선)만큼 시련을 많이 겪은 부분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한민족의 시련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한민족의 자존심이 이어진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고조선은 한민족의 의식에 깊이 자리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중국의 천자를 중심으로한 유가의 세계 질서를 선택했던 근세조선에서는 고조선에 대한 의식이 약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고조선의 존재를 부인하고 기자조선(箕子朝鮮)을 한국사의 시작으로 보는 주장까지 나오기에 이르렀다. 그 후 일제는 고조선은 물론 기자조선까지 부인함으로써 한국 고대사를 말살했다.

광복 후 고조선의 존재를 인정하는 듯했지만 지난날의 잘못된 인식의 영향으로 그 연구는 깊이 있게 진행되지 못했다. 이러한 학문 경향에 대해나 반발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고조선의 실체를 지나치게 과대 평가하는 견해도 대두되었다. 고조선은 동아시아의 넓은 대륙을 지배했던 대제국이었다거나 그러한 제국은 고조선시대에 처음 출현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주장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서 고조선이라는 명칭도 매우 혼란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고조선은 원래 단군조선(檀君朝鮮)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은 단군조선의 존재를 부인하고 기자조선을 고조선이라 부르는가 하면, 중국의 이주민과 토착세력이 연합하여 어떤 나라를 세웠을 것으로 가정하고 그것을 고조선이라 부르기도 한다. 단군조선의 존재를 인정하는 학자들까지도 단군조선과 위만조선(衛滿朝鮮), 한사군(漢四郡)을 합해 고조선이라 부름으로써 고조선이라는 용어는 그 의미가 선명하지 못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와 같은 고조선에 대한 혼란스러운 주장들은 모처럼 고조선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려 하는 일반인들에게 고조선은 역시 불확실한 존재라는 의구심만을 증대시키고 있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이런 현상은 한민족에게는 불행한 일이다. 자신들의 역사를 바로 알지 못한다면 문화민족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민족 문화의 원형은 한국의 고대사회 특히 고조선에 있는데, 그것을 바르게 알지 못한다면 한민족의 정체(正體)를 바르게 인식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이유로도 역사가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 고조선의 역사가 가볍게 취급되어서도 안 된다. 만약 고조선의 역사가 왜곡되거나 가볍게 다루어진다면 지난날 한민족의 민족의식을 말살하기 위해 고조선의 실체를 부인하고 한국사를 왜곡했던 일제의 교육 정책과 똑같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세계의 모든 나라가 문호를 활짝 열어야 하는 개방의 시대다. 이런 때일수록 중요한 것은 주체의식이다. 주체의식 없이 외국의 문물만 공부하고 접하면 그 문물에 종속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역사는 상호자극에 이해 발전한다. 서로 다른 것이 마주쳤을 때 자극을 받고 창조가 일어난다. 그것이 역사의 발전이다. 동일한 것끼리 만났을 때는 약한 쪽이 가한 쪽에 종속될 뿐 창조적인 것이 나타나지 않는다. 국제사회의 개방은 한민족에게 창조적인 발전의 기회가 될 수도 있고 다른 나라의 문물에 종속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창조적인 발전을 위해 한민족은 민족 철학, 민족 사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외래 문물과 마주치면서 창조적인 발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민족은 민족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다. 통일의 준비로서는 물론 통일 후의 이상적인 민족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한민족은 민족 구성원 모두가 공감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을 기초로 민족 철학을 정립하고 사상화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민족 동질성의 회복이다. 한민족의 가치관은 한민족의 역사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 원형은 고대사, 특히 고조선에 있다. 이러한 준비 없는 통일은 큰 혼란을 가져올 것이다.

고조선은 단순히 한국사의 뿌리로서만이 아니라 한민족에게 현실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필자를 급변하는 주변 정세를 보면서 고조선의 복원이 매우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역사학자인 필자에게 책임이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고조선을 복원하는 작업에 매달렸다.

고조선을 포함한 한국 고대사에 관한 부분적인 필자의 견해를 담은 『한국고대사신론韓國古代史新論』(1989) 출간 이래 필자는 다른 학자들의 의견을 귀담아 들으면서 필자의 주장에 잘못이 없는지를 면밀하게 검토했다. 그 결과 기본 골격에는 크게 잘못이 없지만 부분적으로는 수정해야 할 점이 다소 있음을 발견했다. 따라서 고조선에 관한 필자의 견해는 이 책의 내용이 최종 결론이라는 점을 밝혀두고자 한다.

필자의 건강이 더 이상의 연구 및 수정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필자는 1979년부터 1981년까지 하버드대 인류학과 객원교수로 연구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하버드 옌칭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조선에 관한 방대한 중국 사료들과 리지린을 비롯한 북한의 여러 역사학자들의 저서 및 논문을 보고 자극을 받았다. 그때의 자극이 필자로 하여금 평생 이 길을 걷게 한 원동력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의 개정판이 출판되기까지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책의 개정판을 추진해준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 소장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원고를 읽고 교정에 수고를 아끼지 않은 황순종, 기수연 선생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책의 출판을 쾌히 승낙한 만권당 양진호 대표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2015년 10월
윤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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